발전기금을 쾌척하게 된 계기
저는 중학교에서 수학교사로 재직 중인 오인권 학생의 엄마입니다. 인권이는 2017년 2월에 영상디자인과를 졸업했습니다. 4학년 여름에 취업을 할 수 있었으나 여러 이유가 있었고 졸업 후 6개월 동안 쉬고 싶다고 하여 허락을 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자주 아프고 허약해 늘 마음 졸이며 기도로 키운 아들이기도 하고, 졸업작품전이나 공모전 준비로 밤새 작업하는 모습을 늘 봐왔기에 쉼이 필요하다고 여겼던 거죠.
8월말부터 취업을 위해 여러 회사에 이력서를 내기 시작했는데 답변이 오기 시작하던 2017년 9월 18일 월요일 새벽, 남편의 다급한 목소리에 잠깨어 보니 인권이는 가족들이 자고 있던 깊은 새벽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심장마비로 천국에 입성한 후였습니다.
인권이가 대학 1학년 말에 아르바이트를 해 보겠다고 했어요. 1학년 2학기 성적 평점이 2.8대로 떨어져서 자극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남편은 2학년 1학기 등록금을 인권이가 학자금 융자 받아 내라고 했거든요. 그런데 아르바이트를 하겠다고 하니 답답했습니다. 그래서 아르바이트 하는 시간에 공부를 해서 장학금을 받으면 그대로 통장에 넣어 졸업 후 사회에 나갈 때 자금으로 쓰도록 해 주겠다, 선택해라 했더니 공부하겠다고 했고 그 후 세 차례의 성적우수 장학금을 받았습니다. 명지에서 받았던 세 차례의 장학금 중 일부는 학자금 융자받은 돈을 갚았고 나머지는 통장에 넣어두었는데, 그 돈이 지금 영상디자인과의 발전을 위해 낸 돈이에요. 저희 돈이 아닌, 전부 인권이 것이죠. 인권이의 장학금을 인권이가 그토록 즐겁고 행복하게 보낸 영상디자인 학과에서 사용하는 것이 인권이가 제일 기뻐할 것이라 생각하여 남편과 결정한 일입니다.
(영상디자인 촬영실에서, 맨 오른쪽 오인권 학생. 이 곳 촬영실을 리모델링하는 데 발전기금이 쓰인다.)
다재다능했던 오인권 학생, 명지대와 연을 맺다
4세 때 자동차를 입체로 그리기에 그림에 남다른 재주가 있음을 알았어요. 그림 대회에 나갔는데 어른이 손을 댄 그림 아니냐는 소릴 들을 정도로 잘 그렸습니다. 색을 섞어 만들어 내는 것을 잘해 색감이 좋았고, 어릴 때부터 만화를 곧잘 그렸습니다. 만화로 전국대회에서 큰 상을 받기도 했어요. 손끝이 야무지고 섬세해서 찰흙이나 나무젓가락으로 자동차나 기발한 화장실을 만들어 공모전에 나가 입상하기도 했고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는 정교한 모형비행기를 만들어 날려 우수한 성적을 거두기도 했죠. 고등학생 때 미국 아이오와주로 1년간 교환학생으로 간 적이 있었는데, 홈스테이 하는 지역 주민들이 인권이의 그림 솜씨에 놀라며 각 가정마다 그림 하나씩 그려 받았다고 하더군요.
좌. (오인권 학생이 만3세 때 그린 소방차. 소방관 모자와 소방호스를 든 모습, 운전대를 잡은 모습, 소방차 위의 사다리 등을 섬세하게 표현하였다.)
우(오인권 학생이 만4세 때 입체로 그린 자동차. 색감이 좋고 표현력이 우수하다.)
인권이가 만3세에 그린 그림을 보고 영재라고 생각한 저는 아이에 대한 기대에 한껏 부풀어 학원을 다니지 않고도 공부할 수 있다며 닦달했고 힘들게 했어요. 허약해서 병치레를 자주 하는 아이에게 어서 최고를 향해 달려가라고 채찍질했고, 어릴 때부터 척추가 휘어진 아이에게 바른 자세를 강요하며 엄하게 대했죠. 친구들의 신체와 비교됐을 마음의 상처는 생각하지도 않았고 공감하지도 못했어요. 사춘기 때, 휘어진 척추로 인해 가슴이 눌리고 등이 조금 튀어나온 것을 짓궂은 친구들이 놀린다고 말을 하더군요. 마음이 무척 아팠지만 영특함과 지식으로 그들을 이겨주길 바랬어요. 저에게도 인권이의 육체의 가시가 아픔인지라 세상 성공으로 덮어지길 바랐던 거죠. 그래서 더더욱 아이에게 매몰차게 굴었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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